글씨는 마음의 거울이다.
오늘은 자음과 모음에 감정을 담는 방법, 그리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글자 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한다.
1. 글씨는 마음의 형태다
한글 자음과 모음은 소리의 조합이지만, 그 형태는 마음의 흔적을 담기에 아주 적합하다.
획을 길게 뺄지, 점을 작게 찍을지, 기울기를 약간 줄지 말지
그 선택 하나하나에 따라 글씨는 완전히 다른 표정을 갖게 된다.
이것이 캘리그라피가 단순한 '예쁜 글씨'를 넘어서는 이유다.
예를 들어, ‘ㅁ’이라는 자음을 쓸 때, 네모를 단단하게 닫으면 차분하고 정제된 느낌이 들고,
윗면을 살짝 열면 개방감이 느껴진다.
‘ㅅ’은 뾰족하게 위로 세우면 강인함, 둥글게 휘면 부드러움이 스며든다.
모음 ‘ㅏ’는 수직선에 곧게 서 있는 기운이 있고, ‘ㅜ’는 밑으로 향해 내려앉는 안정감을 준다.
그래서 나는 글씨를 쓸 때, 오늘의 감정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글자를 고르는 데 시간을 들인다.
하루 중 가장 마음에 남는 장면이나 말 한마디를 떠올리며,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단어를 적어 내려간다.
이 과정에서 글씨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감정의 흐름을 담는 도구가 된다.
2. 감정을 담은 키워드와 짧은 구절들
캘리그라피 작업을 할 때 자주 사용하는 감성 키워드들이 있다.
이 단어들은 감정과 시선을 끌어내기에 좋은 재료가 된다.
다음은 내가 자주 쓰는 키워드와 함께, 그에 어울리는 짧은 구절들이다.
- 고요 : “고요 속에 마음이 반짝인다.”
- 그리움 : “그리움은 시간이 만든 편지다.”
- 온기 : “당신의 말 한마디에 온기가 퍼졌다.”
- 쉼 : “잠시 멈춤도, 나에게는 쉼이다.”
- 바람 : “지나가는 바람처럼, 기억도 스쳐간다.”
이러한 단어들을 중심으로 감정을 정리하고, 글씨로 표현하면 마음이 정돈된다.
이 감정들은 사진과 함께 엮으면 더욱 힘을 가진다.
예를 들어 '바람'이라는 단어는 바닷가의 풍경과 함께, '고요'는 흐린 하늘 아래 호수의 사진과 함께 어우러질 때,
단어 그 자체 이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2. 내가 가장 사랑하는 글자, ‘복’
수많은 단어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자는 ‘복’이다. 단 하나의 글자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기원과 따뜻한 마음, 나눔의 정서가 녹아 있다.
‘복’은 단순히 행운이라는 뜻을 넘어, 누군가의 삶을 응원하는 말이자, 존재 자체를 축복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캘리그라피로 ‘복’을 쓸 때면 마음이 자연스레 차분해진다.
‘ㅂ’의 두 획은 나란히 손을 모으듯 단정하게 시작되고, ‘ㅗ’는 살짝 위를 향해 부드럽게 열린다.
마지막 ‘ㄱ’은 안으로 감싸며 안정된 마무리를 만든다.
나는 이 글자를 쓸 때, 마치 마음속의 정성을 글씨에 실어 전하는 기분이 든다.
‘복’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오래 남는 온기 같은 단어다.
내가 만든 첫 캘리 엽서 중 하나에도 이 글자가 들어 있었다.
“당신에게 머무는 복이, 조용히 마음을 감싸기를.”
그 엽서를 받은 분이 “그날따라 이 말이 왜 그리 따뜻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고 말해줬을 때,
나는 캘리그라피의 힘을 다시금 깨달았다.
글씨 하나가 마음을 쓰다듬고, 위로하고, 누군가의 하루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
그래서 나는 ‘복’이라는 글자를 가장 자주, 그리고 가장 조심스럽게 쓴다.
마무리하며
글씨는 마음의 또 다른 언어다. 감정을 담은 획 하나가 그날의 나를 기록하고, 내일의 누군가를 위로한다. 자음과 모음에 마음을 실으면, 그 글자는 단순한 문자가 아닌 나만의 이야기로 태어난다.
📌 추신: 감정을 담아 글씨를 쓰고 싶다면
- ‘오늘의 기분’을 단어로 표현해보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 단어를 정했다면 그 느낌에 맞는 획의 속도와 힘을 조절해보자.
- 한 단어를 여러 감정으로 표현해보는 연습도 추천한다. 예: ‘사랑’을 기쁨, 슬픔, 그리움, 애틋함으로 써보기
-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솔직하게 느끼는 것이다. 글씨는 결코 거짓말하지 않는다.
'연(連), 조각보처럼 피어나는 날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캘리그라피 도구 여행 — 붓, 먹, 한지 이야기 (0) | 2025.06.25 |
---|---|
계절을 그리다 — 봄날의 꽃과 캘리그라피 (0) | 2025.06.22 |
손글씨, 마음을 전하는 편지 — 캘리그라피가 사람을 연결할 때 (2) | 2025.06.07 |
[캘리그라피]붓을 들고 떠난 제주 — ‘바람’과 ‘시간’이 머무는 글씨 (1) | 2025.06.06 |
캘리그라피란 무엇일까? — 붓끝에서 시작된 나의 여행 (0) | 2025.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