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눈으로 피고, 마음으로 져간다.
오늘은 봄날의 꽃과 함께했던 캘리그라피의 순간들을 꺼내본다.
1.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붓을 든다
봄이 오면 자연스레 붓을 들게 된다.
아직 아침 공기에는 겨울의 찬 기운이 남아 있어도, 햇살의 결이 바뀌는 순간 나는 알 수 있다.
아, 봄이구나.
그 계절의 기운은 글씨를 타고 온다.
유채꽃이 핀 산책길, 벚꽃잎이 흩날리는 도심 골목, 개나리와 진달래가 담벼락을 채우는 마을 어귀—
이 모든 것이 캘리그라피의 배경이 된다.
봄의 글씨는 다르다.
힘을 뺀 획, 부드러운 곡선, 따뜻한 간격.
나도 모르게 그런 느낌을 담게 된다.
단어를 선택할 때도 ‘소풍’, ‘햇살’, ‘설렘’, ‘꽃잎’, ‘기다림’ 같은 단어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 단어들을 써내려가는 동안, 나는 봄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봄을 손끝으로 느끼고 있다.
2. 꽃을 보며 글씨를 쓰는 시간
올해 봄, 나는 경주를 다녀왔다.
첨성대 앞 유채꽃밭에서 ‘피어라, 너의 봄’이라는 문장을 썼다.
바람이 제법 불었지만 종이를 고정하고 조심스럽게 붓을 눌렀다.
그 장면은 사진보다 글씨에 더 생생하게 남았다.
꽃 사이로 걷던 아이들, 셔터 소리에 웃던 연인들, 봄바람에 흩날리는 나의 머리카락까지도.
꽃을 앞에 두고 글씨를 쓰면, 단어가 훨씬 더 깊어진다.
꽃은 짧고도 강한 감정을 주기 때문에, 글씨도 더욱 절제되고 집중하게 된다.
나는 특히 ‘봄날엔 너를 걷는다’, ‘기다림은 피어나는 감정이다’ 같은 짧은 문장을 자주 쓴다.
한 번은 동백꽃이 떨어진 길을 걷다가 멈춰 섰다.
붉은 잎들이 바닥을 덮고 있었고, 순간 그 이미지가 마음에 강하게 남았다.
그날 쓴 글씨는 “붉게 피었다 조용히 진다”였다.
그 문장을 쓸 땐, 글자 하나하나에 작은 떨림이 있었다.
누군가의 짧지만 강렬한 존재처럼, 봄꽃은 늘 무언가를 말 없이 가르쳐준다.
3. 계절은 지워지지 않는 배경이 된다
봄은 매해 오지만, 똑같은 봄은 없다.
그래서 나는 매년 봄마다 새로운 글씨를 쓴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내가 느낀 봄은 다르기 때문이다.
그 글씨들은 모여 내 삶의 계절 앨범이 되었다.
봄을 담은 캘리 엽서, 꽃잎을 배경으로 한 포토카드, 봄 시 구절을 재해석한 붓글씨 작품까지.
글씨는 계절을 기억하는 도구이자, 감정을 기록하는 방법이었다.
특히 봄은 ‘시작’과 ‘위로’라는 키워드를 품고 있어서 캘리그라피와 잘 어울린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거나, 누군가를 응원하고 싶을 때, 봄의 이미지와 함께 글씨를 전하면 훨씬 진심이 잘 닿는다.
그래서 나는 봄마다 응원 카드도 함께 만든다.
“당신의 봄은 언제나 피고 있어요”, “꽃처럼, 당신도 자연스레 피어날 거예요.”
이 짧은 글귀들이 누군가의 우울한 하루를 밝힐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는 계속 쓴다.
마무리하며
봄은 나에게 늘 붓과 종이를 꺼내게 만든다.
꽃은 피었다 지지만, 그 순간을 글씨로 담아두면, 봄은 사라지지 않는다.
손끝에 피어난 봄날의 기억들—그것이 내가 글씨를 통해 가장 소중히 간직하는 장면들이다.
📌 추신: 봄날의 글씨, 이렇게 남겨보세요
- 봄꽃이 만개하는 장소(경주, 여의도, 제주 구좌읍 등)에서 직접 글씨를 써보자. 사진보다 오래 남는다.
- 꽃말을 활용한 캘리 문구 만들기도 추천: 예) 동백꽃 – 당신을 기다립니다
- 가볍게 시작하고 싶다면, 꽃 사진 위에 캘리 문장을 디지털로 써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봄 시인들의 시구절을 골라 짧게 써보면 감성 연습에 아주 좋다. (예: 윤동주의 ‘새로운 길’, 김용택의 ‘그대 곁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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