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붓글씨와 여행이 만난 이야기다.
제주의 바람 속에서 써내려간 글자들, 그리고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바람이 머무는 섬, 제주의 감성
제주는 나에게 ‘쉼’의 다른 이름이다. 늘 분주한 도시의 흐름 속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면, 나는 제주의 바람을 떠올린다.
그 바람은 매번 다른 온도로 나를 맞이한다.
차가운 겨울 바람은 마음을 맑게 하고, 따뜻한 봄바람은 나를 어루만져준다.
이곳은 캘리그라피를 하기에도 참 좋은 공간이다.
한적한 돌담길, 고요한 바닷가, 바람이 흔드는 억새들—이 모든 풍경이 글씨로 쓰고 싶게 만든다. 눈에 보이는 장면이 아니라,
그 순간의 공기와 감정을 종이에 담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나는 종종 공항에서 내려 첫 마디로 “바람이 반가워”라는 글귀를 써넣곤 한다.
아무도 없던 돌하르방 앞에서, 바다를 향해 홀로 앉은 벤치 위에서,
그리고 눈부신 오름 위에서.
글씨는 여행지에서 내 마음을 붙잡아주는 또 하나의 여정이었다.
2. ‘바람’이라는 단어를 쓸 때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자주 쓴 단어는 ‘바람’이었다.
나는 ‘바람’이란 단어에 유독 많은 감정을 실어 쓰는 편이다.
자유로움, 스침, 흔들림, 그리움—이 모든 것이 한 단어 안에 들어있기 때문이다.
‘ㅂ’은 부드럽고 둥글게 시작하고, ‘ㅏ’는 위로 가볍게 떠오르게 쓴다. ‘ㄹ’은 바람결처럼 한 번 감았다 놓고, ‘ㅁ’은 조용히 마무리한다. 이 글자를 쓸 때는 늘 붓의 속도를 늦춘다.
마치 진짜 바람이 흘러가듯, 나의 손도 함께 흔들리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해질 무렵, 협재 해변에서 노을을 보며 “바람도 그리움도 스쳐가면 그뿐이겠지”라는 구절을 썼다.
그때의 공기, 빛, 소리—all of it—는 지금도 내 글씨 속에 남아 있다. 캘리그라피는 단어를 남기는 것이 아니라,
그 단어를 썼던 '순간'을 기록하는 예술이다.
3. 나의 캘리 여정에 제주가 더해질 때
제주에서는 걷는 모든 순간이 영감이 된다.
어느 골목의 오래된 간판에서,
오름에서 내려다본 마을의 풍경에서, 자그마한 카페 벽에 붙어 있던 문장에서 나는 글씨의 아이디어를 얻는다.
특히 내가 애정하는 장소는 ‘산방산 아래 유채밭’과 ‘구좌읍 동백꽃 숲길’이다.
유채꽃 사이에서 ‘너는 빛나는 존재야’라는 글귀를 썼고, 동백꽃이 바닥을 물들인 길 위에서 ‘붉게 피었다 조용히 진다’는 문장을 남겼다. 이 여행에서 만든 캘리 작품들은 사진과 함께 엽서로 만들 계획이다.
글씨와 여행을 묶는 이 작업은 단지 기록이 아니라, 감정의 지도를 만드는 일이다.
내가 걸었던 길, 머물렀던 바람, 쓰다 멈춘 글자들이 모여 한 편의 일기가 된다.
제주는 내 글씨에게 새로운 호흡을 주는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바람과 풍경은 종이에 머물며, 다시금 나를 기억하게 만든다.
여행을 할 때마다 붓을 챙기게 되는 이유, 그것은 글씨로 순간을 붙잡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 추신: 여행과 글씨를 함께 하고 싶다면
- 작은 A5 스케치북과 붓펜 하나만 챙기면 언제 어디서든 감정 기록이 가능하다.
- 단어를 외부에서 찾기보단, 여행 중 느낀 감정 하나로 출발해보자.
- 풍경을 오래 바라본 뒤, 눈을 감고 느껴지는 이미지를 글자로 표현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글씨는 꼭 완벽할 필요 없다. 삐뚤어져도, 흔들려도 괜찮다. 그게 지금 나의 진짜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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